여러분은 혼영.. 자주 하시나요? 저는 혼영을 처음 해봤습니다만..
오펜하이머가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의 첫 혼영 시도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영화를 자주 보러가는 편은 아니지만 오펜하이머가 상영한다는 첫 소식과 재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줄거리를 조금 읽어보고 느낌이 확 왔었다. '이 영화 재미있겠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안 본 지도 1년이 넘어갔었고 뭐 이성과 데이트할 경우가 아닌 이상은 잘 가지도 않았고.. 특정 영화가 보고 싶어서 영화관을 가는 타입도 아니었다. (마블 제외, 마블은 꼭 챙겨봄)
오펜하이머는 보자마자 왠지 모르겠지만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나중에 보러 가야지, 누구랑 보러 가지? 하고 머릿속에서 잊힐 때 즈음 아무런 일정 없던 한가롭던 주말 새벽에 번득하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직 상영하나?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확인해보니 아직 상영하는 것이었다! '오늘 가볼까?.. '
근데 나는 혼영 따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 뭔가 혼자 가려니까 괜히 머쓱했다.. 그냥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노트북으로 볼까?.. 싶기도 했지만 오펜하이머는 내용 특성상 꼭 영화관에서 봐야만 더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을 것만 같았고 상영 끝물이라 더 이상 미루면 영화 재개봉은 잘 없으니 이번주가 지나면 영영 못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ㅠㅠ
바로 예매를 하고 저녁에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 시작 전 5시간? 전에 예매를 했었는데 나를 제외한 영화를 보는 사람이 2명 빼고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그런 거겠지 싶기도 하고 사람이 없으면 오히려 좋다 생각했었다. ( 사람 너무 많은 것도 싫고 나는 혼자 보러 가는데 커플들끼리 꽁냥 거릴 게 꼴 보기 싫어서)
요즘은 다 폰으로 어플로 예매가 가능한 세상이라 영화관 도착해서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댈 일 도 없고 너무 좋은 것 같다. ^♡^
시간을 착각해서 20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어쩐지 입구를 막아놨더라.. 그래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어떤 노부 부분들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했지만 예상대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나 포함 3명이었고... 심지어 각자 개인플레이 3명이면 그나마 아 3명이 있네 라는 느낌인데 노부부 팀과 나, 이렇게 두 사람 같은 세 사람이었다. 하필 일찍 가서 사람이 없고 광고도 안 나오는 고요한 상영관에 나 - 노부부팀 이렇게만 앉아있으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원래 사람이 많이 차있다가 빠져나가는 곳들이 사람이 없으면 무섭지 않냐고요.. 밤중에 학교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 느낌? 광장에 홀로 서 있는 그런 느낌? 그리고 영화관에 괜히 귀신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오싹 해졌다.
한 10명만 됐었어도 이런 오싹한 느낌은 없었을 텐데 ㅠㅠㅠ 어찌 됐든 이제 와서 괜히 무섭다고 돌아갈 것도 아니었어서 혼자 팝콘 와작 먹으면서 광고가 지나고 영화가 시작됐었다.
오펜하이머 후기
한줄평으로 남기자면
역시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최근 들어 본 영화 중에 가장 감명 깊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나의 무지한 감상평으로는 이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지만 단연코... 정말 오래간만에 본 영화다운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사람이 없어서 무섭다는 생각이 잊게 해 줄 정도로 몰입했고 긴 시간 지루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후기를 찾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 해석이나 더 알아차리지 못한 내용이 있는지 내 느낌과 공유하고 싶어서 (하필 또 혼영이라 보고 난 뒤 공유할 사람이 없었어서 쓸쓸했다,,) 물론 단순히 핵폭탄 콰과광 펑펑펑- 하는 웅장함을 기대하고 간 사람들도 많았던 듯하다. 그래서 오펜하이머는 후기가 극과 극이었다.
엥? 핵폭탄 터지는 장면 액션영화처럼 기대하고 갔는데 뭔 소리임?;; vs와 인생영화다.
나는 후자 쪽이었다.
마냥 액션만 기대하고 가서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 못 하고 노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영화에 집중을 제대로 한지가 일단 의심이 됐었고 도대체 이 멋진 영화를 노잼이라고 일부 평가받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느낌? 물론 취향차이긴 하겠지만.
아 물론 시점이 왔다 갔다 하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는 점도 인정은 한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점 은 마냥 이과적인, 물리학적인 내용만 있는 게 아니라 철학적인 내용도 담고 있어서 우주, 물리학, 철학 이런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냥 최고의 영화였다. 보고 난 뒤 마음이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까지 받았으니까. 또 천재의 삶을 엿보는 듯한 즐거움도 있었다.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인슈타인 외에도 다른 학자들도 역사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영화 속 인물로 만나는 즐거움이 더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아 그리고 노부부께서 상영 시작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께 이 영화 배경이 세계 2차 대전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며 열심히 설명해 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ㅋㅋㅋㅋ 뭔가 되게 이 영화에 진심이셨던 게 보기 좋았었다. (영화에 진심이었던 사람만 모였던 상영관..)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단연 핵폭탄이 성공하는 장면이다
* 하필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던 날
* 성공여부에 잔뜩 긴장해 있지만 티는 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마치 큰 공연을 나가기 전에 긴장을 푸려고 서로 농담을 하는 듯한, 하지만 긴장을 하지 않을 순 없는 그런 분위기처럼 보였다)
* 성공을 할 경우, 아주 적은 확률이었지만 연쇄폭발이 되었다면 지구전체를 멸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아주 ~ 적은 가능성.
만약 이 작은 가능성이 실제였다면 그날이 지구의 마지막이 됐었을지도..?
* 결국 폭탄은 성공적으로 폭발했고 아주 밝은 빛이 잠시 세상을 집어삼키던 고요한 장면,
그리고 뒤늦게 몰려오는 후폭풍들, 모래바람, 엄청난 굉음들. 마치 추후의 오펜하이머의 영광과 추락을 의미하는 듯도 했다.
정말 도파민이 분출이 안될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또 이미 미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추측해 볼 수 있지만 이 장면을 기점으로 세계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단순히 액션이 좋았다! 보다는 역사적인 한 순간이고 이 기점으로 오펜하이머가 정말 세상의 파괴자가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단순 성공의 기쁨보다는 무언의 두려움이 몰려왔다.
오펜하이머의 내적 갈등
각하, 제 손에는 피가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
연구에는 몰입을 했지만 그 쓰임에 대한 것은 연구자의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의 내면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일본에 폭탄이 투하된 뒤 승리의 연설을 하면서 사람들이 발 구르는 소리로 심장박동을 표현한 것도, 일본 어디선가에서 새까맣게 타버렸을 시체로 환각이 보이는 표현 등등이 오펜하이머가 얼마나 내적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을지 이입이 되었다.
분명 미국에서는 폭탄의 아버지,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엄청난 사상자를 내게 만든 무기를 만든 사람이고 그 사람들을 다 내 손으로 죽였다고 생각하는 오펜하이머
하지만 승리의 연설에서만큼이라도 그런 티를 내면 안 되었던, 혼란스러운 내면과 달리 자신감 넘치게 말을 했었어야 하는 오펜하이머.
단순히 국가 간의 승, 패의 면보다는 오펜하이머에게는 인간을 한 줌 재로 만들어버릴 괴물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책임감과 죽음의 신이라 느껴지는 감당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복수심에 눈이 먼 자
오펜하이머와 악연이 된 스트로스역을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를 했다.
반가운 얼굴이었지만 영화 속 인물은 정말 고구마 백개를 먹은 듯 한 역할이었다.
스트로스는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둘이서 얘기를 한 이후로 자신에게 쌀쌀맞아지고 다른 학자들과의 사이도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오펜하이머의 오만한 태도들로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후 복수심에 눈이 멀어 추후 폭탄을 만들고 성공적인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던 오펜하이머를 스파이로 만들어서 내쫓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복수심, 질투, 혐오 등등의 감정이 뒤섞인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지저분하게 왜곡이 되는지에 인간의 추악함?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불륜하다 딱 걸림
스트로스가 잘 짜둔 판에서 마녀사냥을 당하게 된 오펜하이머, 그가 심문에 가까운 취조를 받다가 아내 몰래 옛 연인인 진태트록과 만나고 하룻밤을 보냈던 것과 스파이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그녀를 사랑했던 것을 털어놓고 인정해야만 했던 상황, 뒤에서 듣고 있는 아내.
여기서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의 압박감이 나마저도 발가벗은 상태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오펜하이머 위에 나체로 올라가 있는 진 태트록의 표정을 보고 있는 아내의 시선 연출까지 너무 강렬했던 장면이었다.
(그 표정이 마치,,, 니 남편 대단하더라; 같은 표정이었기에.....)
배신감과 분노로 가득 찬 아내 키티의 모습까지!
오펜하이머와 키티
하지만 그런 배신감을 느꼈던 키티일지라도 자신이 오펜하이머의 아내로서 심문을 받을 때
의도가 다분한 질문들에 강력히 대응하고 오펜하이머를 보호하려고 했던 당당하고 강한 그녀를 보니 오펜하이머와 그녀 사이의 사랑? 신뢰? 의리?...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선 모르겠지만 관계사이의 강력한 게 있는 것이 느껴졌고 신기했다.
그 이후에도 옛 연인인 진 태트록이 결국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너져 내린 오펜하이머를 보고도 쓰레기라고 오펜하이머를 떠나지도 않고 정신 차리라고 강하게 나오는 키티 또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며 대단했다. 그런 그녀도 아마 속은 많이 문드러졌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국가에게 배신당한 상황에, 옛 연인의 자살소식까지 겹친 오펜하이머를 보면 당연히 그를 탓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진 태트록이 과거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고 했었던 것을 외면했고 추후 자살 소식을 들은 오펜하이머가 죄책감을 느낀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오펜하이머도 키티가 자신의 불륜을 알고 난 후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동료에게도 키티에 대한 신뢰를 보인 것처럼 그들 사이에는 강력한 신뢰감, 의리? 사랑?... 책임감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바로 배우자인가?.. 나는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그 유대감을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오펜하이머와 키티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깊게 남았다.
갑자기 '겨.. 결혼은 대체 무엇일까.. '라는 현실적인 생각도 갑자기 들게 만들었다.. 한편 우울증에 시달리던 진 태트록의 잔상 또한 마음 아프게 남았다.
나였으면 둘 중에 누가 되고 싶을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펜하이머가 되고 싶진 않냐? 라면 그처럼 많은 죄책감과 무게감을 안고 살고 싶진 않았음)
- 수없이 청혼을 했지만 거절한 첫사랑, 결혼하고서도 계속 만남을 이어왔던 진 태트록,
- 결혼을 하고 결국 불륜사실을 알게 되어도 끈끈한 유대감으로 평생을 서로 옆에 있어주는 키티 오펜하이머.
사실 이때 막 솔로가 됐던 차라 이런 장면들이 더 와닿고 생각이 많아졌었다.
근데 생각하다 보니까 오펜하이머가 그냥 나쁜 놈이다. (빠른 결론)
실제로도 여자가 많았다는데...
파괴의 연쇄반응
특히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호수 근처에서 스트로스가 없을 때 둘이서 얘기하던 장면은 영화초반엔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스트로스의 시선처럼 우리는 멀리서 지켜보고 얘기를 듣진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영화가 끝나면서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나왔다.
오펜하이머: 알버트, 제가 예전에 말했던 계산 기억나세요? 파괴의 연쇄반응 말입니다.
아인슈타인: 잘 기억하는데, 그게 왜?
오펜하이머: 시작된 것 같아요
이미 그 연쇄반응은 오펜하이머가 폭탄을 만들기 전, 그것에 관련된 이론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아인슈타인을 만났을 과거,
그 둘이 만난 시점부터 연쇄반응이 일어났었던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아인슈타인이 했던 연구가 씨를 뿌리고, 싹이 트고, 다른 가설들과 가능성들이 나오며 결국은 오펜하이머 손에서 폭탄이 만들어지는 기반이 되었고, 세상을 파괴하는 위협적인 무기들로 전쟁하는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걸 의미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오펜하이머의 직감이 파괴의 연쇄반응이 시작됨을 느꼈던 것일까?
이런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에 대한 학자들의 순수한 이야기에 스트로스가 그저 자신의 입장과 추측으로 감정을 추악하게 물들이고 그것에만 매몰되어 왔다는 것에도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저 말을 관객도 초반엔 몰랐었으니 영화의 마무리에 우리조차도 스트로스처럼 그렇게 단정 짓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한번 관객에게 띠용 하는 순간을 준 듯한 느낌이었다.
혼영 후기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후 혹시나 쿠키가 더 있을지 궁금해서 네이버로 검색을 하는데 노부부께서 후다닥 나가시는 것이었다..! 후다닥 네이버로 검색을 해보고 쿠키는 없다는 말에 나도 같이 후다닥 나왔다... 그 텅 빈 상영관에 혼자 앉아있기엔 너무 무서웠기에... 아르바이트생들도 혼자 들어가서 청소하고 하면서 되게 무서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예전부터 무서운 얘기, 귀신 이야기, 괴담들을 즐겨봤었는데 사람이 확 몰렸다 확 빠지는 곳에는 귀신이 많다는 말과 실제로 경험담들이 속출하는 것들을 보고 난 후 혼자서 있는 건 좀 무서운 것 같다.. ㅠㅠ (쫄보 특)
영화는 너무너무 성공적으로 재미있게 즐겼지만 나와서 그 감정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옆에 없다는 게 너무 쓸쓸했다... 집 가는 길이 그래서 유독 더 쓸쓸했던 것 같다.
대신 집에 와서 친구들이랑 카톡으로 오펜하이머 본 사람을 찾아서 열심히 얘기를 나눴다! 다음번에 또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너무 끝물 말고 사람이 적당히 있는 한... 15명 정도만 있을 정도의 시기를 잘 유추해서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혼밥, 혼영 같은 건 자주 안 해봤기 때문에 좀 머쓱 코 쓱 하긴 했지만 모든 게 다 처음이 그렇지..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점이 좋았어서 같이 갈 사람이 있어도 혼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론은 :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혼영 괜찮았다. 다음에 또 해야지.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면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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